여신티케 2011. 1. 12. 11:36
 

      초등학교 시절은 유난히 편식을 심하게 해서인지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갸냘픈 몸이었던 나는

      그 당시 십리 길이라고 하는 먼 길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겨울이면 넓은 들 에서 불어오는 황량하고 매서운 바람에

      춥다며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

      겨울엔 학교에서 난로에 땔 솔 방울을

      주워 가야했고 봄 엔 퇴비로 쓰일  풀도 베어

      반 별로 경쟁하듯 높이 쌓아 놓기도 했습니다.

      여름엔 보리베기도 있었고 시골이라 그런지 아이들에게

      일도 많이 시켰던거 같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집 에서는 일을 해본 기억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별 일을 다 시키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가는 길은 멀기도 했지만

      봄 이면 꽃 들이 산과 들에서 손짓하고

      길 양 옆에서는 플러터너스 나무들이 가끔 줄지어 서있어

      여름에는 고마운 그늘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진달래피는 계절이면 꽃 을 따먹으며 일부러 산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추워서 고생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는 아이들이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비포장길을 걷다보면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먼지와

      매연마저도 반가워하던 시절 이었으니까요

      비포장 길이어서 자갈밭을 걸어야 하기에 대부분 운동화 고무신

      다른 신발은 얼마 견디질 못하던 시절..

      어느날 엄마에게 샌들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고집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장날을 기다려

      주섬주섬 장에 내다 팔 물건을 챙겨 장을  나서며

      나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 고집을 이미 아셨기에

      이 물건이 팔려야 신발을 살 수 있다는걸

      미리 다짐을 받아 두시려는 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그 당시는

      무조건 고집 부리면 생기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지은걸 내다 팔아야 현금이 생기는데

      무조건 떼만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진안 장 에 가면 둑방 옆이 엄마가 장날 

      농사지으신 물건을 가끔 내다 파시는 장소였습니다.

      하루종일 한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도 초조한 마음으로 옆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신발을 못살까봐 조마조마 한 끝에

      해질녘 드뎌 생애 첫 빨간샌들 을 장만 하게되었습니다.

      자갈길을 걸어야 하는 시골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샌들이 웬말입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고집이 세서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니

      좋게 보면 집중력 있고 나쁘게 보면 피곤합니다.

       

      샌들을 신고 비포장 길을 걸어다니니 견디다 못한

      샌들은 두달을 채 못가서 떨어지고 말더군요

      암튼 제 고집때문에 샌들도 주인 잘못만나

      시골에 와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사라브라이트만/First of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