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고인 곳은 낮은 자리다
조금 높은 곳은 마르고 약간 낮은 곳은 젖어 있다
고여 있는 뒤안길 걸어가면서
나는 조각하늘과 나무눈과 지는 꽃잎 이야기를 듣는다
고인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비의 소리 담가 두면
어느 사이 잔잔해진다
그 때 들으면 비의 음절 하나하나가 보인다
본다는 것도 듣는다는 것이다
비가 묻혀온 세상 듣는 것이다
하늘이 내는 소리도 거기 속한다
나무나 꽃도 낮은 자리에서 들으면 들린다
길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듣는다
문정영 시인의 <듣는다는 것>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물웅덩이 넓어졌을 때서야 비로소 작아지는 빗소리.
메말라 잔뜩 갈라졌던 마음에도
소나기가 내린 뒤,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한번씩 크게 내려야
내 속의 울림을 헤아려,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없이 낮아져서 그 소리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