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의 한페이지(마음의글)

전남진 시인의 <얼굴 잊은 친구를 위하여>

여신티케 2011. 9. 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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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좋아했지만 난 결혼을 하며 집을 떠나는 일이 귀찮아졌다 낯선 도시의 외로움도 처음 만나는 풍경의 거친 눈빛도 길 위에 걸치는 배고픔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방향감각도 혼자 앉은 식탁도 모르는 사람들의 불편한 눈빛도 더는 나를 불러내지 못했다 침대는 밤에 갇히는 감옥 저녁이 오면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나는 한동안 경멸했다 집은 밤을 가둔 감옥 스스로 감옥으로 걸어가는 나를 나는 한동안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여 내가 어떻게 그대를 잊겠는가 길을 기억하는 낡은 구두와 낯선 공기로 가득한 지도를 필름이 남은 카메라와 비밀을 조금씩 담아놓은 배낭을 나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네 바람이 창고의 먼지를 날려 오래된 지도를 펼치면 친구여, 난 그대가 내게로 남겨둔 길을 따라 바닥이 닳은 구두와 함께 떠날 것이네 그러나 친구여 아직은 창고를 열 수 없다네 가족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밤을 나는 이길 수 없다네 저녁이 오면 허기진 얼굴로 몽유병자처럼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나를 아직은 이길 수 없다네 쓸쓸한 밤이 찾아와 어디 낯선 길 오래된 여인숙에 홀로 들거든 친구여, 나를 기억해주게 그대 옆자리 빈 베개에 내 영혼이 따라와 있다는 것을.

     

    첨부이미지가을... 아침 저녁 제법 쌀쌀한 기운을 느끼며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 창고 한 구석에 놓인 낡은 배낭에서 그날의 낯선 바람 내음이 묻어 올 것 같은... 떠나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커지는 그런 날.. 내옆에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동행하는 여행길이라면 더 없이 행복한 여행이 되리라 먼 고향길 잘들 다녀왔을 친구들이여!! 우리도 언젠가 바람처럼 훌쩍 떠날 가을 여행을 계획해 보자꾸나